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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냄새의 과학

후각 감각은 나이를 어떻게 기억할까 – 냄새와 세월의 뇌 반응

냄새는 시간보다 빠르게 기억을 되살린다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아주 작은 냄새 하나로 갑작스럽게 되살아난다. 누구에게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오래된 찻집의 향긋한 홍차 냄새가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또는 빗속에서 스며드는 젖은 흙냄새가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을 불쑥 소환하기도 한다. 나는 몇 해 전 오래된 공책을 꺼냈다가, 그 속에서 스며 나온 종이 냄새에 갑자기 중학교 시절 수업시간이 떠올라 놀란 적이 있다. 그때의 공기, 친구들의 웃음소리, 창밖의 나뭇잎 흔들림까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다른 감각들과 달리, 후각은 마치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은밀한 열쇠처럼 작용한다. 이 글에서는 후각이 인간의 뇌에서 기억을 저장하는 방법, 특히 나이와 연결된 기억을 불러오는 방법, 그리고 내 경험 속에서 냄새가 어떻게 세월을 품고 있었는지를 과학적이고도 감성적으로 풀어보려 한다.


후각이 나이를 기억하는 방법

냄새는 기억을 ‘연결’하는 고리다

 인간의 감각 중에서 냄새는 유일하게 마음의 깊은 층을 흔드는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향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기억의 특정 조각과 연결되어 작동하는 감각이다. 냄새는 마치 기억 속에 박아 둔 작은 갈고리처럼 존재한다. 그러다가 정확한 순간에 과거의 감정과 풍경을 끌어올린다. 다른 감각이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면, 냄새는 그 순간으로 나를 ‘이동’시킨다. 왜냐하면 냄새는 경험 그 자체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흐릿해져도, 어떤 향을 맡았는지는 놀랍도록 오래 남는다.

나는 몇 년 전 낯선 카페에 들어갔다가 한 모금의 커피 향에서 놀라움을 느낀 적이 있다. 그 향은 어린 시절 사촌 형이 타 주던 믹스커피의 향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갑자기 형이 사용하던 금속 스푼의 소리, 종이컵의 얇은 촉감, 그리고 그가 해 주던 사소한 농담까지 떠오르며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당시엔 아무렇지 않았던 장면이었지만, 향 하나로 그 기억은 의미 있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냄새는 단순한 감각 정보가 아니라, 삶의 한 장면을 깊이 연결하는 정서적 신호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후각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냄새가 어떻게 나이를 기억하는가

 우리는 특정 향기에 나이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뇌는 은밀하게 ‘냄새-시간’의 연관성을 기억한다. 어린 시절 자주 맡았던 냄새는 성인이 된 이후 다시 경험했을 때,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강하게 소환한다. 이것은 뇌가 냄새를 시간의 지표로도 사용하는 특성 때문이다. 특히 후각은 시각처럼 꾸며지지 않고, 언어처럼 논리화되지 않기 때문에 ‘감정 그 자체’로 저장된다. 이 감정은 나이와 함께 결합되어 과거의 특정 시기를 한 덩어리의 느낌으로 되살린다.

나는 몇 년 전 요리를 하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의 오래된 레시피 노트를 정리했다. 노트에서 풍겨 나오는 약간의 고춧가루 냄새에 순간 멈춰 섰다. 그 냄새는 어릴 때 명절 준비를 하며 주방을 분주하게 오가던 어머니의 모습과 겹쳤다. 손끝에서 묻어나던 양념 냄새가 노트에 배어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분명히 ‘어릴 적 집’이라는 특정 시점에 머물러 있었다. 나의 뇌는 냄새를 통해 과거의 시간을 추출했고, 그 시간 속의 나이, 감정, 공간까지 모두 불러냈다. 후각은 기억을 저장하는 동시에, 그 기억이 머물던 나이마저도 기억하는 특별한 감각이다.

뇌는 냄새를 어떻게 시간과 함께 저장하는가

 뇌는 후각 정보를 단기 기억으로 저장하지 않고, 비교적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생존과도 관련이 깊다. 음식의 부패 여부, 위협적인 냄새, 안전한 환경의 냄새 등을 판단하기 위해 뇌는 향기를 깊이 각인시키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향기 자체보다 그 향기를 처음 경험했을 당시의 ‘상황과 감정’이다. 그 맥락이 함께 저장되기 때문에, 훗날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 그 ‘전체적인 경험’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나의 남편은 군 복무 시절, 겨울 훈련지에서 맡은 휘발유 냄새를 지금도 정확히 기억한다고 한다. 그 냄새는 단지 연료 냄새가 아니라, 새벽의 얼어붙은 공기, 군장의 무게, 동료들의 숨결과 함께 저장되어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 뇌는 즉각 그 시절로 나를 끌어당긴다. 그리고 그 냄새는, 내가 그때 몇 살이었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함께 꺼내준다. 뇌는 냄새를 단독으로 저장하지 않는다. 냄새는 그 시점의 ‘인생 조각’을 고스란히 묶어서 저장하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며 후각은 어떻게 변하는가

  나이가 들면 오감 중 가장 먼저 둔해지는 감각이 후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과학적으로도 후각은 40대 이후부터 점차 민감도가 낮아진다. 60대 이후에는 특정 향을 구분하는 능력도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기억과 관련된 향기의 반응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후각 민감도가 줄어들어도, 특정 냄새에 대한 반응은 여전히 감정과 함께 작동한다. 이것이 후각이 가진 또 다른 특별함이다.

나 또한 최근 들어 예전보다 향기에 덜 민감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특히 미세한 차이의 향수는 구별하기 어려워졌지만, 특정한 기억이 담긴 냄새에는 여전히 강하게 반응한다. 오래된 책 냄새, 겨울 새벽의 연탄 냄새, 그리고 엄마가 쓰던 립스틱 특유의 향기 같은 것들은 여전히 강렬하게 내 기억을 끌어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후각은 물리적으로 약해질 수 있지만, 기억 속 냄새들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그것은 단지 향기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냄새는 뇌 속에 저장된 세월의 감정이다

 후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뇌는 그것을 가장 선명하게 기억한다. 향기는 소리보다 더 깊게, 이미지보다 더 정확하게 기억의 버튼을 누른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잊게 된다. 후각은 이와 다르게 가장 오래도록 우리의 감정을 지켜주는 감각이다. 냄새는 단지 향이 아니라, 삶의 풍경이자 감정의 시간이다. 내가 맡아온 냄새들은 곧 내가 지나온 시간이었다. 그 냄새 하나하나는 내 삶의 특정 시기를 정직하게 기억하고 있다.

누군가는 “냄새는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했다. 나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물건은 없어져도 향기는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 지나도 향기는 다시 나를 끌어당긴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 삶의 어느 한 시점으로 다시 돌아간다. 후각은 세월을 기억하는 감각이며, 우리의 인생을 다시 살아보게 하는 가장 조용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