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냄새의 과학

냄새는 언제 처음 기억될까 – 영아기 후각 발달과 감정 각인의 시작

odornews 2025. 7. 2. 21:17

이유는 몰랐지만 익숙했던 향, 그 시작의 단서

 사람들은 보통 유년기의 기억이 언어를 익히고 사고력이 생긴 뒤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감정이라는 측면에서 그보다 훨씬 이전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걸 느낀 적이 있다. 어느 날 문득, 낯설지 않은 냄새 하나가 나를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으로 감쌌다. 따뜻하고 약간의 비누 향이 섞이는 냄새는 순간적으로 안도감과 함께 다정한 감정까지 불러왔다.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게 되었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 향은 어릴 적 내 몸을 감싸던 어떤 존재의 체취였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어머니께서 체취의 정체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내가 아기였을 때 나를 자주 안아주던 사람이 외할머니였다. 외할머니께서 늘 쓰던 비누가 그런 향이 났기에 그 냄새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때의 장면은 떠오르지 않지만, 그 감정만은 분명하게 살아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냄새가 기억보다 먼저 남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꼈다. 실제로 뇌과학과 발달심리학에서는 영아기의 후각이 다른 감각보다 먼저 발달한다. 또한, 사람의 감정과 강력하게 연결된다고 말한다. 이 글에서는 사람이 언제 처음 냄새를 기억하게 되는지를 영아기의 후각 발달과 감정 각인의 관점에서 탐구한다. 더 나아가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냄새와 감정 기억의 연결고리를 풀어보려 한다.


어린 시절 형성된 후각

후각은 태어나기 전부터 작동하는 첫 번째 감각이다

 놀랍게도 인간은 태어나기도 전에 냄새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임신 약 7개월 차부터 태아의 후각 수용체가 형성된다. 형성됨에 따라 양수 속에 녹아 있는 엄마의 식습관과 체취, 환경 냄새 등을 감지하게 된다. 태아는 이런 후각 자극을 통해 바깥세상에 대한 첫 신호를 받는다. 실제로 신생아는 태어난 직후부터 어머니의 젖 냄새와 피부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 이 냄새에 노출될 때에는 심박수가 안정되고 울음도 줄어드는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후각 자극은 단순한 감각 인식을 넘어서, 안정감과 애착 형성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나의 경우, 어릴 적 이유 없이 특정한 풀 내음이 나는 비누 냄새에 유난히 안정을 느끼곤 했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어머니에게 이유를 들은 바로는 그 비누는 내가 갓난아기 때 사용했던 유아용 고체 비누와 동일한 제품이었다. 기억은 없지만 감정은 남아 있었다는 말이 어쩌면 정확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후각은 태생적으로 감정과 깊이 연결된 감각이며, 인간이 세상을 처음 경험하는 방식 중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수단이다.

영아기의 냄새 경험은 감정 각인의 기반이 된다

 영아기 시절의 후각 경험은 단순히 냄새를 맡는 것을 넘어선다. 이는, 감정을 저장하고 각인시키는 도구로 작용한다. 이 시기의 기억은 대부분 장면이나 언어로 구성되지 않는다. 대신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요소로 저장된다. 그중 냄새는 가장 선명하게 감정을 보존하는 매개체가 된다. 신생아나 영아는 엄마의 체취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이후, 특정 냄새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그 냄새와 함께 안전한 감정을 연결시킨다. 그래서 유아 시절의 후각 경험은 일종의 ‘감정 코드’처럼 뇌에 각인된다. 유아 시절이 끝나고 시간이 지났을 때에도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 같은 정서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나 역시 오래된 이불에서 나는 약간의 세제 냄새와 햇볕에 말린 섬유 냄새를 맡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포근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어릴 적 외할머니 댁에서 자던 이불 냄새와 유사했다. 그곳에서 느꼈던 편안함이 냄새와 함께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냄새를 통해 감정이 저장되는 생리적 반응이다.결국 후각은 영아기의 불안정한 정서 상태를 안정시켜 주는 본능적 감정 조절 장치이기도 하다.

후각은 시간 개념 이전의 세계를 기억하는 감각이다

 후각은 인간이 시간을 인식하기 전,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감각이다. 시간 개념이 생기기 전의 인간, 즉 영아는 낮과 밤의 구분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특정한 냄새가 반복되는 순간을 통해 세계를 학습한다. 구체적으로, 매일 수유 시간에 느껴지는 젖 냄새, 부모의 피부 향, 집 안 공기의 습도와 냄새를 통해 ‘지금은 안전한 시간’, 혹은 ‘지금은 낯선 순간’이라는 것을 형성하게 만든다. 이는 뇌가 냄새를 통해 시간의 리듬을 감정적으로 각인하고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중학교 시절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조카를 지켜본 경험이 있다. 그 아이는 매일 저녁 수유가 끝나고 목욕 후 방에 퍼지는 로션 냄새를 맡으면 더는 울지 않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냄새만으로 자장가를 부르기 전부터 눈을 감기 시작했다. 시간의 감각이 언어가 아니라 냄새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런 냄새의 시간표를 무의식 중에 따른다. 특정한 향을 맡을 때 이유 없이 피곤해지거나, 갑자기 고요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그 냄새가 뇌 속 어딘가에 특정한 ‘시간 감정’을 저장해 두었기 때문이다.

냄새는 장소를 ‘정서적 풍경’으로 각인시킨다

 공간은 단지 벽과 바닥, 천장으로 이루어진 물리적 구역이 아니다. 인간에게 공간은 언제나 ‘느낌’으로 먼저 다가온다. 우리는 장소를 색이나 구조로 기억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보다 먼저 특정한 기분이나 분위기로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 정서적 풍경을 구성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가 바로 ‘냄새’다. 특히 언어 이전의 시기를 살아가는 영아에게는, 공간의 의미를 부여하는 데 후각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냄새는 시각보다 느리고, 귀보다 더 오래 머문다. 조용히 침투해 기억 속 어딘가에 감정을 묻어둔다. 또한, 그 장소를 단순한 좌표가 아닌 감정적 무늬로 채운다. 한 장소의 공기, 가구에서 나는 냄새, 그 안에 있던 사람의 체취, 혹은 시간이 쌓이며 배어든 냄새까지도 공간 자체로서 저장된다. 이것은 후각이 단지 냄새를 맡는 감각이 아니라, 장소의 정서를 수집하는 감각이라는 뜻이다.

만약 냄새만 맡고 다른 장소이지만 비슷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나 또한 구조도, 사람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감정만은 후각이

고스란히 되살려낸 것이다. 


후각은 기억의 물리적 기록이 아니고 감정의 반복이다

 냄새는 감정을 부른다. 그 감정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또한, 감정은 기억 속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른 채, 느닷없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후각은 예고 없이 작동하는 감각이다. 누군가의 말이나 얼굴보다 먼저 마음속 어딘가를 건드리는 것은, 때로는 스친 공기의 향기다. 그 향기는 사건이나 정보를 떠올리기보다, 몸의 긴장이나 감정의 무늬로 먼저 반응한다.

아이였을 때 형성된 어떤 냄새에 대한 반응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언어로 정리되지 않았기에 더 본능적으로 남아 있다. 더 나아가 때로는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채 삶의 어떤 선택과 감정 반응에 영향을 준다. 특정한 공간을 좋아하게 되거나, 누군가에게 막연한 친밀감을 느끼는 감정조차 그 뿌리는 오래전 형성된 후각적 감정 기억에 닿아 있을 수 있다.

냄새는 정리되지 않은 채 쌓인 감정의 흔적이다. 그것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아주 오래 기다리다, 조건이 맞는 순간 불쑥 깨어난다. 그래서 후각은 회상보다 즉각적이며 회고보다 더 날것의 감정에 가깝다. 우리는 냄새를 통해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감정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반응 속에 우리가 처음 세상을 받아들였던 방식이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