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취에도 유전자가 있다? - 유전적 요인이 결정하는 개인 냄새의 특성
가족끼리는 왜 비슷한 냄새가 날까?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 느껴졌던 경험이 하나 있다. 외할머니 댁에 가면 이불 냄새가 꼭 우리 집 거실 소파 냄새랑 닮아 있었다. 두 공간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두 집에서 각각 사용하는 세제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코끝에 닿는 냄새가 묘하게 유사해서, ‘가족끼리는 체취도 닮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이후에도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거나, 같은 공간에 오래 있을 때 뭔가 모르게 익숙하고 편안한 냄새가 감돌았다. 이 경험이 반복될수록 체취에 대한 의문은 더 깊어졌다.
그리고 실제로 체취는 단순한 땀이나 외부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최근 들어 유전자와 체취 사이의 과학적 연결 고리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진다. 이에 따라 나의 이런 경험이 단지 기분 탓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체취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유전자가 만드는 개개인의 ‘향기 서명’이다. 이는 인간관계, 짝 선택, 심지어 건강상태까지도 암시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체취는 단지 누군가에게 향긋하거나 불쾌하게 느껴지는 ‘냄새’가 아니다. 이는 후각이라는 감각을 통해 전달되는 생물학적 정보이며, 사람 사이에 감정적인 반응을 유발하는 무형의 신호다. 내가 특정 공간이나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안정감이나 이질감은 종종 그 사람의 체취에서 비롯된다. 체취는 말보다 먼저 도착해 감정을 흔들고, 기억보다 오래 남아 관계의 본질을 형성한다. 그래서 이 주제를 깊이 파헤쳐 보고 싶었다. 단순히 궁금해서가 아니라, 체취가 인간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유전자와 체취의 관계를 밝힌 과학적 발견들
인간의 체취는 단순히 땀이나 피지 분비의 결과물이 아니다. 실제로 인간의 유전자는 체취를 결정짓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HLA 유전자(Human Leukocyte Antigen)'다. 이 유전자는 면역 체계에 관여하는 요소이다. 동시에 각 개인의 고유한 체취를 형성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다. 특히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의 연구에서는, 여성들이 유전적으로 자신과 HLA 유형이 다른 남성의 체취를 더 매력적으로 느낀다는 결과가 도출되기도 했다. 이는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생물학적 본능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냄새가 인간의 짝 선택에도 중요한 신호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특정 사람의 냄새에 끌리는 이유는 단지 그 사람이 ‘향이 좋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유전자와의 조화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단순한 흥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유전적 다양성을 추구하고, 그 수단으로 후각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체취는 진화의 도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유전자 기반 체취는 단지 연인 사이의 끌림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다양한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정교한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하다. 과학은 이제 ‘향기’라는 보이지 않는 언어가 인류 진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밝혀내고 있다.
체취 유사성, 가족 간에도 실제로 존재한다
내 경험처럼 가족끼리는 체취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실제로 가족 구성원은 유전자의 상당 부분을 공유하고, 같은 생활 환경, 식습관, 미생물 군집을 공유하기 때문에 체취 유사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다. 특히 겨드랑이, 발, 두피와 같이 피지선과 땀이 집중된 부위에서 분비되는 물질들은 피부 위의 박테리아와 반응해 체취를 만든다. 이때 어떤 박테리아가 우세하여도 유전자의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형제나 부모 자식 간에 비슷한 박테리아 분포를 보이면 체취도 유사해질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오빠와 운동을 다녀온 후, 같은 옷장에 운동복을 넣었을 때 도저히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비슷한 냄새가 나던 적이 있었다. 이는 단순히 운동으로 인한 땀 냄새가 아니라, 유전적으로 닮은 체취가 공통적으로 배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유사한 생활 습관과 세제, 식습관이 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환경에 살아도 유전자 구성이 다르면 체취는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쌍둥이 연구에서 일란성 쌍둥이는 체취 유사도가 높았지만, 이란성 쌍둥이의 경우에는 오히려 체취 차이가 뚜렷했다는 보고도 있다. 이는 결국 체취에 있어 유전자가 환경보다 근본적인 기초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전적 체취는 소속감과 무리 내 구분 신호로 작동한다
체취는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생물학적 신호이다. 또한, 사회적 소속감과 경계 심리를 조절하는 감각적 도구로도 작용한다. 인간은 원시 시절부터 집단 생활을 통해 생존해 왔고, 이 과정에서 ‘같은 무리’와 ‘다른 무리’를 구분하는 본능이 발달했다. 이때 후각은 시각보다 더 빠르게 반응하며, 유전적으로 유사한 체취를 가진 사람을 ‘우리 편’으로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 사회에서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개나 침팬지 무리에서도 체취가 다르면 경계하거나 공격적인 반응을 보인다. 인간도 무의식적으로 비슷한 유전적 냄새를 가진 사람과 있을 때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낯선 장소에서 처음 본 사람들과 어울릴 때, 설명할 수 없는 친근함을 느꼈던 순간들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역이나 생활 환경, 식습관, 심지어 유전적 뿌리까지 어느 정도 겹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과의 체취가 조화롭고 익숙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런 경험은 체취가 단지 개인 위생이나 호불호 문제가 아니라, 집단 내 유사성, 심리적 연결감, 사회적 안정성 형성에 관여하는 감각 요소임을 보여준다. 사회학적으로도 체취는 무리의 경계를 만들고, 타인을 식별하며, 신뢰와 거리감을 조율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결국 유전자가 만든 체취는 개인의 정체성을 넘어 공동체 내 위치를 인식시키는 신호로 작용한다. 이처럼 체취는 유전적 정보가 반영된 ‘감각의 여권’이라 할 수 있다.
체취의 유전적 정보는 기술과 미래 산업에도 활용된다
체취에 담긴 유전적 정보는 단순히 인간관계나 건강 신호를 넘어, 최근에는 첨단 기술 산업에서도 중요한 데이터 자산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체취 기반의 바이오 인식 기술은 보안, 헬스케어, 사물인터넷(IoT)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일부 기술 기업은 개인의 체취를 디지털로 저장하고 판별하는 ‘전자 코(E-nose)’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 장치는 유전자 기반의 체취 차이를 감지해 사람을 식별하거나 건강 상태를 분석하는 데 사용된다.
이러한 기술이 가능해진 이유는 체취가 유전자에 기반한 고유하고 변하지 않는 생물학적 지문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지문이나 홍채와 달리, 체취는 위조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매우 정밀하다는 강점이 있다. 향후에는 공공장소 입장 시 체취 기반 자동 인증 시스템이 보편화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나는 최근 이와 관련된 기술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발표자는 ‘개인의 유전자 냄새가 향후 의료 기록이나 보험, 심지어 맞춤형 식단 추천 시스템에까지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체취는 이제 단순한 후각 정보가 아니라, 유전자의 작동 기록이 담긴 감각 기반의 생체 신호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체취는 기술과 연결되며 인간 삶의 방식까지 변화시키는 미래형 정보로 확장되고 있다.
나만의 냄새는 곧 나의 유전자다
체취는 단지 위생 상태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타고난 유전자가 만드는 '고유한 후각적 서명(Signature)'이다. 이 향기는 타인에게 나에 대한 무의식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족과 닮은 냄새, 이끌리는 사람의 향기, 혹은 이유 없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냄새 모두가 유전자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나의 경험처럼, 체취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적 거리나 친밀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건강의 신호를 받아들이기도 한다. 체취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말보다 먼저 타인에게 전달되는 ‘나의 유전자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냄새를 부끄러워하기보다는 나의 생물학적 정체성이자 고유한 신호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향기를 타고났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본능적이고 솔직한 나의 일부다.
체취를 인식하는 것은 결국 ‘나를 아는 과정’과도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 향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게 타인에게 각인된다. 유전적 체취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생긴다면, 인간관계는 더욱 솔직하고 건강해질 수 있다. 향기는 언어보다 더 오래 남고, 감정보다 더 직접적으로 기억에 새겨진다. 당신이 뿜는 향기 또한 누군가의 기억 속에 조용히 머물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