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인간의 체취 관계 – 반려동물이 기억하는 당신의 냄새
반려동물은 당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냄새를 먼저 기억한다
나는 강아지를 키운 지 9년 차이다. 이름은 ‘무지’. 강아지가 사람보다 냄새에 민감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감각이 ‘기억’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은 강아지를 통해 체감하게 되었다. 처음 나 빼고 우리 가족이 다 함께 외출했다가 돌아오기 전부터, 무지는 현관문 앞에 나가있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현관문을 열기도 전에—우리 가족이복도에 들어선 순간부터 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지는 분명 우리 가족을 냄새로 알아보았다. 게다가 내가 감기에 걸려 향수를 뿌리지 않은 날이나, 아니면 샴푸를 바꾼 날에는 확실히 행동이 달랐다. 낯선 듯 나를 멀찍이 바라보기도 하고, 한참 냄새를 킁킁 맡은 후에야 익숙함을 찾는 듯했다.
이런 경험은 나에게 체취가 단순히 땀 냄새, 샴푸 냄새, 향수 냄새 이상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반려동물에게 체취란 ‘사람의 감정, 상태, 관계’를 기억하는 도구이자 언어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반려동물이 인간의 냄새를 어떻게 인식하고, 왜 그 냄새를 기억하며, 인간과의 유대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내 경험과 함께 천천히 풀어보고자 한다.
후각 중심 세계에서 체취는 ‘정체성’이다
사람에게 얼굴이 인식의 중심이라면, 동물에게는 냄새가 곧 얼굴이다. 특히 강아지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은 인간보다 수십 배, 때로는 수천 배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람마다 고유한 체취를 감지하고 구분할 수 있다. 이 체취는 유전적 구성, 식습관, 피부 상태, 감정 변화 등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강아지는 사람의 겨드랑이, 발, 배꼽, 사타구니 등 피지 분비가 활발한 부위의 체취를 통해 정체성을 인식한다. 이것은 단순히 ‘냄새가 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나는 무지가 내가 외출하고 나서 내 몸에 붙어 냄새를 맡는 이유를 한참 뒤에야 알았다. 땀이 밴 옷을 통해 내 기분, 건강 상태, 하루의 긴장감을 맡고 주인을 인식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강아지나 고양이가 서로의 엉덩이 냄새를 맡듯이 사람에게도 그런 고유 체취에 따라 신뢰 여부, 안정감, 친밀도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사랑하는 반려동물은 우리의 말보다 냄새로 먼저 우리를 신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뢰는 하루하루의 체취를 기반으로 서서히 쌓여간다.
감정은 냄새로 배어 나오고, 반려동물은 그것을 기억한다
사람의 감정은 후각적으로도 분명한 변화를 만든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땀의 조성이 달라진다. 또한, 피지 분비량이 증가하거나 독특한 산성 냄새가 올라오기도 한다. 나는 시험이나 면접을 앞둔 날에는 무지가 나를 경계하며 다가오지 않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평소에는 다가와 껌딱지처럼 붙어 옆에 앉아있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한 발짝 떨어진 채 나를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당시엔 단순한 기분 탓이라고 넘겼다. 나중에 관련 논문을 찾아보고 나서야 감정 상태에 따른 체취 변화와 반려동물의 반응이 매우 밀접하다는 과학적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려동물은 인간의 감정적 냄새를 기억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감정 상태가 긍정적이었는지, 불안했는지를 장기적으로 구분해 행동에 반영한다.
따라서 냄새는 단순히 현재의 정보가 아니라, 정서적 기억을 형성하는 매개체이다. 내가 기분이 좋을 때 쓰는 핸드크림 향에 무지가 유난히 반응하며 코를 비비는 것도 아마 그 향에 좋은 기억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향은 사라지지만, 감정은 남는다. 반려동물은 그 감정을 냄새로 기억한다.
인공 향은 반려동물에게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나는 한때 향수에 빠져 있었다. 다양한 브랜드의 향수를 구비해 두고 기분에 따라 골라 뿌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무지가 그 시 절 유난히 코를 찡그리며 뒤로 물러나던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반려동물에게 향수는 후각을 방해하는 강력한 자극이었다.
향수는 에탄올과 고농축 향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사람에겐 좋은 향이라도 반려동물에게는 불쾌한 냄새가 될 수 있다. 특히 강아지의 경우 후각 신경이 매우 예민하기에 사람에게는 약한 냄새여도 수십 배 강하게 인지할 수 있다. 나는 실수로 무지와 안고 자던 이불에 향수를 뿌린 날, 무지가 계속 안절부절못하며 침대에 올라오지 않고 구석에 들어가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부터 나는 피부에 직접 향수를 뿌리는 대신 옷깃 안쪽에만 가볍게 분사하거나, 아예 오일향 같은 천연 향만 사용하기 시작했다. 반려동물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냄새’이기 때문이다. 향기로 나를 감추는 건, 나를 숨기는 일이기도 했다. 반려동물은 꾸며진 나보다 날것의 나를 더 잘 이해한다. 체취는 그 진심의 언어였다.
이별 후에도 남는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냄새’였다
반려동물은 시각보다 후각에 더 많은 정서를 저장한다. 그래서 반려인이 잠시 외출했을 때도, 남겨진 이불이나 쿠션, 수건 등을 끌어안고 자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출장으로 3박 4일간 집을 비운 적이 있었다. 이때 무지는 내가 쓰던 수건만 물고 침대에서 움직이지 않고 내 방에 들어가있다는 말을 듣고 눈물이 날 뻔했다.
심지어 어떤 보호자는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넌 후, 그 냄새가 남아 있는 담요나 옷을 버리지 못해 오랫동안 간직하는 경우도 있다. 그건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냄새 속에 각인된 기억과 유대감이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도 개는 후각을 통해 사람의 특정 면역체, 호르몬 패턴, 스트레스 상태, 병력까지 구분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어떤 반려동물은 암환자의 체취 변화를 미리 알아채는 경우도 보고되었다. 이처럼 체취는 단순히 ‘냄새’가 아니라, 우리 몸 전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정체성이고, 반려동물은 그 이야기를 충실히 읽어낸다.
이별 후에도 반려동물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의 목소리가 아닌, 그들과 함께한 공간 속에 남아 있는 우리의 냄새일지도 모른다.
체취는 반려동물에게 전하는 가장 진실한 언어다
우리는 말을 한다. 반려동물에게 사랑한한다고, 오늘 기분이 좋다고, 혹은 혼내서 미안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반려동물은 그 말을 ‘냄새’로 이해한다. 우리가 무슨 감정을 갖고 있는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말보다 먼저 체취로 감지하고 기억한다. 나는 이제 향수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향기로운 냄새 대신 ‘나의 냄새’를 남기는 것이 반려동물에게 진짜 나를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체취는 숨길 수 없다. 그리고 그 속엔 진심이 담긴다. 반려동물과의 관계에서 가장 깊은 유대는 말이 아니라, 함께 나눈 냄새와 기억의 층들이다. 오늘 당신이 퇴근 후 안기는 순간, 당신의 반려동물은 그 냄새 속에서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그 냄새를 오래도록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