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과 예술 – 향을 매개로 하는 창작의 심리학
보이지 않는 향, 떠오르는 이미지
사람들은 종종 시각이나 청각처럼 뚜렷한 감각에 주목하지만, 가장 직관적이고 무의식적인 감각은 바로 후각이다. 냄새는 말보다 빠르고, 빛보다 깊게 우리 안으로 스며든다. 어린 시절 맡았던 엄마의 화장품 냄새, 비 오는 날의 젖은 흙내음, 오래된 책장에서 풍겨오는 종이의 향기. 이런 향들은 그 자체로 기억의 통로가 되고, 감정의 트리거가 된다. 예술이란 감정과 기억의 재구성이라고 한다면, 후각은 예술 창작에 있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핵심 감각이다. 나 역시 한동안 창작의 벽 앞에서 막막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이미지가 흐릿해지는 그 시기, 한 가지 향이 내 창작을 다시 깨우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 글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후각이 어떻게 예술에 작용하고, 창작자에게 심리적 통로가 되어주는지 탐구한 기록이다.
사실 ‘향’은 창작에서 무의식적으로만 사용되어 왔던 감각이다. 그러나 내가 그 감각을 의식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느낀 점은, 향이 단지 과거를 불러오는 수단이 아니라 미래의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창작에서 감정은 과거의 것이지만, 상상은 언제나 미래를 향한다. 후각은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였다.
후각은 감정을 불러오는 가장 원초적인 자극이다
뇌과학에 따르면 후각은 감정과 기억을 관장하는 편도체와 해마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 이는 곧, 향이 단순한 냄새가 아닌 감정적 기억의 촉진제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다. 시각은 대상과 거리 두기를 유지한다. 반면에, 후각은 물리적 거리감 없이 바로 감정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어떤 향은 ‘좋은 느낌’이라기보다, 구체적인 감정으로 다가온다. 포근함, 고요함, 또는 때로는 불안함이나 외로움으로 둥이 구체적이다.
나의 경우, 특정한 향이 글쓰기의 스위치가 되어준 적이 있다. 한겨울, 우연히 서랍 안에서 오래된 시트러스 향 오일을 발견하고 디퓨저에 몇 방울 떨어뜨렸을 때였다. 강렬하고 신선한 향이 방 안을 가득 채우자, 어릴 적 여름의 감정이 갑자기 밀려왔다. 냄새가 떠오르게 한 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었다. 이는 당시의 공기, 기분, 표정 같은 입체적인 장면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멈춰 있던 창작의 흐름이 갑자기 다시 살아났다.
이후 나는 특정한 감정을 꺼내고 싶을 때 의도적으로 향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열쇠와 같았다. 무의식의 서랍을 여는 열쇠였던 셈이다. 나는 그 감정을 문장으로 번역하는 데 향이 큰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자주 깨달았다.
향은 창작자의 심리 공간을 조율하는 도구이다
향은 공간의 분위기를 바꾼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결국 창작자의 내면 상태에 영향을 준다. 내가 한때 자주 하던 루틴 중 하나는 작업 전에 향초를 켜는 것이었다. 겉보기에 단순한 행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작업 공간을 ‘창작의 장’으로 전환하는 의식 같은 것이었다. 후각은 곧 공간의 기분이 되었고, 공간의 기분은 내 마음을 안정시키는 리듬이 되었다.
이런 루틴이 중요한 이유는 창작의 흐름이 항상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정리하는 작업이다. 정작 글을 쓰게 만드는 감정은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향을 통한 공간 연출은 감정을 유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나는 부드러운 우디 계열의 향을 맡으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반대로 달콤한 프루티 향은 창의적인 상상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향은 나에게 감정의 볼륨을 조절하는 버튼처럼 느껴졌다. 너무 날카로운 감정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리거나, 무기력한 기분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었다. 향은 마음을 조율할 수 있는 가장 섬세한 도구 중의 하나였다.
후각은 장면을 구성하는 서사의 일부이다
향은 단지 글을 쓰게 만드는 도구만은 아니다. 창작물 그 자체 속에 스며들 수 있는 상징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이야기 속에서 ‘커피 향이 나는 오후’, ‘책 냄새가 배인 방’, ‘상한 우유 냄새가 나는 계단’ 같은 표현들은 단순한 묘사 이상의 기능을 한다. 그 냄새가 독자나 관객에게 떠올리는 감정, 경험, 감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향은 장면 속 공기를 만들고, 분위기를 지배한다.
나도 소설을 쓸 때 향을 의도적으로 배치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인물이 불안을 느끼는 장면에선 무취의 공간을 택한다. 그리고, 감정이 열리는 장면에선 가벼운 꽃향기를 더한다. 독자가 그것을 직접 맡지는 않더라도, 그 향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장면의 몰입도가 달라진다. 후각은 직접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 강력하다.
글의 리듬 속에 향을 배치하는 것은 독자와의 비언어적 교감이다. 그들이 향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같은 감정을 그들과 공유하는 통로를 갖게 된다. 그래서 후각은 단지 장치가 아니라, 창작자와 독자를 이어주는 은밀한 대화 수단이다.
향은 창작자의 기억과 자아를 연결한다
우리는 향을 통해 자신을 다시 만난다. 향은 과거의 나를 끌어오고, 그 기억은 지금의 나를 새롭게 설명한다. 그래서 창작자에게 후각은 기억을 조직하고 자아를 탐색하는 과정에 중요한 도구가 된다. 나 역시 창작이 막힐 때 특정 향을 통해 내 기억 속 장면들을 되짚어보곤 한다. 단어가 막힐 땐 문장이 아닌 ‘냄새’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향이 불러온 순간을 통해, 기억의 미세한 감정들을 끌어올리며 글을 다시 써 내려간다.
창작은 결국 자신을 반복해서 다시 만나는 일이다. 그리고 향은 그 만남을 훨씬 더 직관적이고 감각적으로 만들어준다. 시각이 중심이 된 세계 속에서, 후각은 마치 감정의 숨겨진 지문처럼 작용한다. 향은 시간의 두께를 갖고 있다. 그 두께는 창작자에게 서사의 깊이를 제공한다.
최근 나는 나만의 ‘향 노트’를 만들고 있다. 각 향을 맡았을 때 떠오른 감정과 장면, 그리고 그때 쓴 단어들을 기록하는 방식이다. 향이 단지 감각이 아니라, 창작의 파편을 수집하는 기록 장치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있다.
향으로 창작을 기억하는 법
예술은 감정을 해석하는 행위이고, 후각은 그 감정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감각이다. 창작자에게 향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이는 감정의 실마리이며 내면과 연결된 통로이다. 나는 글이 막힐 때마다 향을 떠올린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떠오르는 공간, 손으로 만지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이 바로 이것이다. 향은 기억의 결을 따라 감정을 다시 조직하게 만든다. 그 감정은 결국 글이 되고 이미지가 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창작자이거나 감정과 기억을 더 깊게 탐색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늘 하루 한 가지 향을 의도적으로 느껴보길 바란다. 그 향이 무엇을 떠오르게 하는지, 어떤 장면을 불러오는지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발견이 있을 것이다. 창작은 결국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다. 후각은 그 회복의 가장 깊은 문이다.
향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문장이며, 하나의 목소리이다. 때로는 작가 자신보다 더 정직하게 감정을 기록하는 증인이다. 그러니 이제 향을 도구가 아닌 공동 저자로 여겨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의 창작 세계가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