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없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냄새를 인식하며 살아간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향, 지하철에서 맡게 되는 다양한 체취, 빵집 앞을 지날 때 풍겨오는 고소한 냄새, 그리고 누군가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향수의 잔향 등이 있다. 냄새는 단순한 감각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우리 뇌 깊숙한 곳에 저장된 감정, 기억, 위협을 감지하는 통로이다. 또한, 사람들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 나는 몇 년 전 심한 코로나에 걸린 이후 갑자기 후각을 잃었다. 처음에는 감기 증상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았다. 병원에서 “후각 상실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내가 평범하게 여겼던 세계의 절반이 사라졌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후각을 잃은 나의 실제 경험과 함께, 후각 상실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다시 발견하게 되는지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자 한다.
후각이 사라진 일상 – 보이지 않지만 큰 결핍
후각을 잃고 나면 무엇보다 생활 속의 미묘한 불편함이 처음으로 다가온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이 느껴지지 않고, 쓰레기통이 썩어가도 인지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향수를 뿌린 의미조차 없어진다. 냄새는 감각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이기에, 그것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놀라울 정도로 큰 공허감을 남긴다. 나 역시 처음에는 단순히 입맛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적인 연결 고리’가 끊어진 느낌을 받게 되었다. 어릴 적 겨울방학의 이불 냄새, 엄마가 끓여주던 된장국의 향, 좋아하던 사람의 향수 냄새 같은 것들이 전부 감각에서 지워지자, 내 기억 속 어떤 장면들도 무채색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더 큰 문제는 위험 감지 능력의 상실이었다. 가스가 새는지도 모른 채 하루를 보낸 적도 있었고, 음식이 상해도 눈으로만 확인해야 했다. ‘냄새를 맡는다’는 일상적인 행동이 이렇게나 많은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후각을 잃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후각은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우리가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생존 수단이기도 했다. 그 결핍은 내 삶 전반에 미묘한 불안을 끼워 넣었다.
맛과 감정의 연결이 끊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 하나는, 맛의 대부분이 후각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혀로 느끼는 짠맛, 단맛, 신맛, 쓴맛은 극히 제한적이며, 진짜 ‘맛의 정체성’은 향에서 비롯된다. 나 또한 후각을 잃은 뒤부터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아무리 매콤한 찌개나 향긋한 나물 반찬을 먹어도, 입속에선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장 슬펐던 것은 소중한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할 때 느껴지던 정서적 연결마저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친구들과의 외식 자리에서도 음식에 대한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점차 자리를 피하고 싶어졌다. 음식은 단순한 영양 섭취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감정의 언어’였음을 실감했다. 후각 상실은 감각의 차단뿐 아니라 관계의 거리감도 만들어냈다. 결국 나는 맛 대신 식감이나 온도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향을 대신할 요소들을 찾아보려 애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완일 뿐 완전한 대체는 아니었다.
후각의 결핍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
후각은 인간의 감정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 특히 뇌의 편도체와 해마는 후각과 직결된 감정과 기억을 관장하는 부분이다. 나 역시 후각을 잃고 나서 무기력감과 가벼운 우울 증세를 겪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감기 후유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것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졌고,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 많아졌다. 아침에 일어나도 신선한 공기의 냄새를 느끼지 못하고, 샤워 후 비누 향조차 느껴지지 않으니 ‘내가 나를 케어한다’는 감각도 점점 무뎌졌다.
심리학자들은 후각 상실이 삶의 질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후각 상실 환자 중 상당수가 우울감, 고립감, 자기 정체감 혼란을 경험한다고 한다. 내가 겪었던 혼란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세상을 감각적으로 인지하는 능력이 줄어들수록, 감정과 현실 사이에 거리감이 생겼고, 나 스스로가 나를 잘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 명상, 일기 쓰기, 촉각 중심의 활동 등으로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다. 후각을 잃었지만, 감정은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후각 없이도 풍요로운 삶을 위한 실천들
나는 여전히 후각을 되찾지 못했지만, 그 결핍 속에서 다른 감각들을 더 섬세하게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청각과 촉각의 감수성을 높이는 생활 습관을 들였다.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고, 향 대신 부드러운 소재의 옷이나 침구를 선택했다. 또 ‘보이는 향기’라는 개념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꾸미는 것에 집중했다. 예전에는 향으로 안정감을 얻었다면, 이제는 조명과 색감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또한 음식에서는 식감과 온도 변화에 더 민감해졌다. 아삭한 채소, 바삭한 튀김, 부드러운 퓨레 등을 구분하면서 ‘촉각 미각’의 세계를 확장시켰다. 냄새가 사라진 만큼, 나머지 감각을 섬세하게 키우는 법을 배운 셈이다. 그리고 후각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예상과 달리 많은 이들이 공감과 배려를 보여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정서적 고립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잃은 것보다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들에 집중하면서, 후각 없이도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감각의 결핍이 가르쳐준 삶의 깊이
후각을 잃는다는 것은 단지 하나의 감각을 잃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질, 감정, 관계, 그리고 정체성의 일부분을 다시 조율해야 하는 깊은 내면의 여정이었다. 나는 냄새 없는 세상에서 한동안 방황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새로운 방식의 감각, 새로운 형태의 연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떤 감각을 잃을 수 있지만, 삶의 깊이와 감정의 밀도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 후각을 잃은 세계는 낯설고 불편하지만, 그 안에서도 삶을 재해석하고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갈 수 있다. 이 글이 후각 상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방향이 되길 바란다. 나 역시 그 여정을 지금도 계속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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